Blog Full Notice
back to main page

47 분 소요

motivation: 네이버 블로그

#행복을 찾아서(1), 2021년 3,4월 생각 정리 : 네이버 블로그

행복을 찾아서(1), 2021년 3,4월 생각 정리

프로파일 무지성 2021. 7. 13. 8:09
URL 복사 이웃추가

나의 나태함의 원인과 해결방법

원영섭, 2021년 3,4월

목차

0. 이 글을 쓰게 된 이유

1. 나태함은 왜 나를 불행하게 하는가?

1-1. 기본적인 행복의 정의에서 나태함이 나를 불행하게 하는 이유

1-2. 기본적인 행복의 정의에서 나태함을 해결하는 개괄적인 방법

1-3. 붓다 출현 이전의 진정한 행복의 정의에서 나태함을 해결하는 방법

1-4. 초기 불교에서 진정한 행복의 정의에서 나태함을 해결하는 방법

1-5.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의 정의에서 나태함을 해결하는 방법

2. 뇌과학의 관점에서 나태함을 극복하는 방법

2-1. 뇌과학적 관점에서 내가 나태했던 개괄적인 이유

2-2. 도파민의 관점에서 내가 나태했던 개괄적인 이유

2-3. 도파민의 관점에서 내가 나태했던 구체적인 이유

2-4. 유전적 요인의 개선을 통해 나태함을 해결하는 방법

2-5. 환경적 요인의 개선을 통해 나태함을 해결하는 방법

3. 3,4월에 나에게 보고서 내용을 적용시킨 과정(일기)

0. 이 글을 쓰게 된 이유

-현재 나태함이 나의 행복을 막는 유일한 방해물이고, 나태함을 극복해 행복해지고 싶기 때문이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산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나는 인생을 행복하기 위해 산다. 그러나 현재 나는 나태함 때문에 행복하지가 않다.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감사하게도 나에게는 현재 나태함만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은 결국 내가 행복하기 위함이다. 행복하기 위해 나태함을 극복해야 하고, 나태함을 극복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다. 그래서 나태함을 극복하기 위해 이 글에서는 나태함을 극복하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알아보고 이를 실천할 것이다.

사실 근데 이전에도 나의 행복을 막는 여러가지 것들이 있었다. 나를 불행하게 하는 것이 진짜 너무 많았다. 나는 그래서 그 여러 문제들을 정의, 질문하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실천하여 여러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들을 문제의식 삼았지만 구체적인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를 불행하게 하는 원인들은 모두 나 때문이 아니라 외부의 다른 사람들 때문이었다. 또는 나를 불행하게 하는 원인들이 나에게 있더라도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바꾸도록 유도하는 것, 즉 추상적인 해결책뿐이었다.

하나의 불행의 사례로 나와 부모님의 관계를 들 수 있다. 우리 부모님은 어렸을 때부터 나를 신뢰하지 못했다. 내가 신뢰할 행동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부모님이 내가 신뢰할 만한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학에 들어와서도 나는 부모님께 신뢰를 줄 만한 행동을 하지 못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인정을 받는 것을 원했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께 신뢰를 줄 수 있도록 나 자신을 바꿔 왔다. 그러나 시험 기간 등 특수한 상황 때문에 신뢰를 깨뜨리는 행동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 스스로는 신뢰할 만한 행동을 하도록 바꾸어 왔지만 부모님의 인식은 변함없었다.

결국 내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사실은 나 스스로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한 타인의 시선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나 스스로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목표해야 할 실질적인 것은 타인의 생각 변화다. 이 타인의 생각 변화는 내가 바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를 바꾸고 나에 대한 생각이 바뀌도록 하는 구체적인 전략을 시행함으로써 목표를 이룰 수 있다. 그 전략은 이 상황에선 내가 약속을 잘 지킨다는 것을 계속 PR하는 것이었고, 더불어 나는 굉장히 논리적이고 배려 깊은 아이라는 것을 계속 부모님께 PR했다. 그랬더니 통계학적인 관점에서 부모님이 더이상 나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뉘앙스를 보지 못하게 되었다. 즉 부모님은 이제 내가 약속을 지키지 못했으면 어떤 이상값에 해당하는 특수한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불행의 예로 나는 못 생겼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불행했다. 이 생각을 갖게 된 이유는 고등학교 때 나만 보면 외모 비하를 하던 친구 때문이긴 하다. 어쨌든 이 불행 원인을 더욱 구체적으로 접근해 보자. 못생긴 것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못생긴 것뿐이다. 근데 왜 이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는가? 여성들이 외모를 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남자들이 나를 사람으로써 좋아하게 만들 수는 있었지만 여성들이 나를 사람으로써 좋아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이때 고등학교 때 생긴 상처가 영향을 주었는데, 외모 때문에 여자들이 나를 사람으로써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 외모 때문이 아니라 여성을 대하는 행동과 성격 때문에 여성들이 나를 사람으로써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이 글의 본문에서도 다룰 예정이지만 유전적 요인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환경적 요인이 없으면 말짱 꽝이 된다. 즉 이 말은 유전적 요인이 이상값에 해당하지만 않는다면 환경적 요인이 특정 형질을 주도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상값에 해당하지 않는 것은 그냥 사람처럼만 생기면 된다는 것이다.

그 이후 여성을 대하는 행동, 성격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변화해야겠다는 생각만 하는 추상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여성이 나를 사람으로서 좋아하게 되도록 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이전에도 말했듯이 타인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내가 바뀐다고 해서 문제가 바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시간과 변인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한 여성을 계속 만나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들을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은, 타인의 시선을 바꾸기 위해 나를 바꿔야 한다는 굉장히 추상적인 생각이다. 불행에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사실 수학 문제처럼 정답이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해결 답안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추상적인’ 생각이 해결 답안이다. ‘타인의 자신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자신이 변화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이라는 해결책은 매우 추상적으로 보이지만 이것이 불행에 관련된 핵심적인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지속적으로 만나는 여성이 있었는데, 타인의 자신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자신이 변화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니 자연스레 그 여성이 나에 대해서 사람으로써 호감 가질 수 있는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당연히 아예 이러한 노력이 적용 안되는 사람이 있다. 아예 맞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렇지만 나와 맞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이 문제에 있어서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전의 나는 모든 여성이 나랑 맞지 않는 것 같아, 이성적 매력이 없는 것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분명히 나를 사람으로써 좋아해줄 여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나태함이라는 불행 요소는 타인에 의해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행동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위의 불행 요소와는 종류가 완전 다른 문제였다. 위의 문제들은 타인의 시선에 의한 문제들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추상적인 생각으로도 해결이 가능했지만 이 문제는 아니었다. 이 문제들은 단순히 바뀌어야 겠다는 생각만으로는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었다. ‘자신이 변화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과 충분한 시간으로 타인의 시선을 바꿀 수 있었지만, 나 자신의 나태함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바뀌어야 겠다는 생각과 충분한 시간은 나를 변화시키지 못했다.

왜 그런 것일까? 변화해야 된다는 필요성을 진정으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변화에 대한 간절함이 부족한 것이다. 나태함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이 변화해야 겠다는 생각이 굉장히 약한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나태함을 극복해야 겠다는 의지를 키우면 나태함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 맞다. 그러나 인간은 개개인마다 나태함의 정도가 다르게 프로그래밍 되어 있어 단순히 나태함을 간절히 극복해야겠다는 생각만으로는 행동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점이 특수하다. 왜냐하면 나태함의 정도는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데, 단순한 간절한 생각의 차이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환경적 요인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태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간 개개인의 특유의 나태함의 정도를 유전적 요인 또는 환경적 요인의 조정을 통해 바꿔야 한다.

이 보고서는 인간 개개인마다 나태함의 정도가 왜 달라 지는지 신경전달물질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이 나태함의 정도를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을 변화시켜 개선하는 방법에 대해 다룰 것이다. 특히 이 보고서는 나태함의 정도를 환경적 요인을 변화시켜 개선하는 방법에 초점을 두고 있다. 아직 나태함의 정도를 유전적 요인을 통해 바꾸는 약물 치료와 뇌 자극 방법은 대다수 사람들에게 얻게되는 이익 대비 심한 부작용을 얻을 확률이 매우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나태함이라는 불행 요소는 나태함 정도를 변화시키는 환경적 요인의 변화와 충분한 시간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내 가설이다. 나태함 정도를 변화시키는 환경적 요인의 변화를 통해 ‘변화해야겠다는 생각’의 기본값을 더욱 강화시켜 간절한 생각이 되도록 하고, 그 바뀌어야 한다는 간절함을 통해 꾸준한 행동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 내 가설인 것이다.

위 가설을 나를 통해 증명해 보고자 한다. 그래서 나태함 정도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적 요인을 변화시키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실천하기 위해 이 보고서를 쓰는 것이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나태함 정도에 영향을 주는 환경적 요인을 변화시키는 이론적 방법만을 다루는 보고서가 될 것이다. 환경적 요인을 변화시키는 구체적인 방법을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구체적인 실천 보고서에 관해 관심이 가신다면 나에게 말해 주었으면 한다. 다 작성한 후 피드백을 요청하겠다. 관심을 주셔서 너무 감사한 마음밖에 없는 것 같다.

또한 앞으로 몇몇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들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생각을 듣고 싶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생각은 어떠할까? 누나의 생각은 어떠할까? 내 가족의 관점에서, 보고서를 통한 나태함에 대한 나의 인식과 그들의 인식의 상호작용 과정이 매우 궁금하다. 그들의 생각이 듣고 싶다. 내 친구들, 유전공학과 선배들, 선생님들의 생각은 어떨까? 그들 고유의 인생 경험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나태함을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그들의 생각이 매우 궁금하다.

또한 인간에게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는 관점에서 사람들에게 평가를 받아보고 싶다. 독자들의 전공 관점에서 나태함을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서 들어보고 싶다. 교육학적, 행정학적, 정치학적, 심리학적, 사회 시스템의 관점에서도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다. 특히 유전적 요인을 통해 나태함을 해결하는 방법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 듣고 싶다. 유전공학적, 뇌과학적, 약학적, 병리학적 관점에서 나태함의 해결책에 대해 토의해보고 싶다.

어쨌든 이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표한다.

1. 나태함은 왜 나를 불행하게 하는가?

먼저 행복의 다양한 정의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그 다음 행복의 다양한 정의에 따라 나태함이 행복 추구를 방해하는지 안 하는지 알아볼 것이다.

1-1. 기본적인 행복의 정의에서 나태함이 나를 불행하게 하는 이유

-미래의 이익보다 현재의 이익이 중요하다는 행동, 즉 나태한 행동은 현재의 나에게 고통스러운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현재의 나는 현재의 이익보다 미래의 이익을 추구할 때 느끼는 행복이 더 크다. 그러나 이 사실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지만, 기존의 나태한 행동이 일어나게 되는 상황, 즉 인지-행동 불일치가 일어나는 상황에서 나태함은 나를 불행하게 만든다.

우선 행복이란 무엇일까? 행복이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우리는 그렇다면 무엇을 원할까? 우리는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것을 원한다. 그 이유는 무언가를 욕망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행동은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과 관련이 있는데, 이 도파민은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것을 시각적으로 인지할 때 생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것을 원하고,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것을 얻을 때 행복이란 감정을 느낀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행복을 얻기 위한 행동이다. 나태한 행동도 마찬가지이다. 나태한 사람들에게 나태한 행동은 행복으로 인지된다. 위에서 나온 행복의 정의에 따르면, 나태한 행동은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것을 얻기 위한 행동이다. 특히 나태한 행동을 하는 상태는 현재의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것에 집중하는 상태, 즉 현재의 이익에 집중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나태함을 더욱 분석하기 위해 먼저 정의해 보겠다. 나태함은 미래의 이익보다 현재의 이익을 더욱 중요시하여, 미래의 이익과 관련된 문제를 빨리 해결하려고 하는 ‘근시안적 생각’이다. 이 ‘근시안적 생각’은 미래의 이익과 관련된 문제를 직면하지 못하고 회피하는 사고 방식으로 미래의 이익과 성과를 내는 관점에서 전혀 효율적이지 않은 해결방식이다. 그에 대한 근거로 나태하면 숙제를 성실히 할 수 있을까? 나태하면 좋은 논문을 낼 수 있을까? 아니다. 숙제/논문 제출 하루 전에 몰아서 대충 할 것이 뻔하다.

그렇다면 왜 나는 현재 나태한 행동을 하면 불행할까? 그 이유는 현재의 나는 현재의 이익보다 미래의 이익을 더욱 중요시 하지만, 나태함이 유전적/환경적 요인에 의해 나의 행동 유도 방식에 프로그래밍 되어 있기 때문에, 나태함이 자동적으로 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의 사람은 자신의 철학과 행동 양식이 계속 반대가 되어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을 나는 나태함에 대한 인지-행동 불일치라고 부른다. 이 인지-행동 불일치가 일어나면 인간은 불행하다고 느낀다. 나태한 행동을 하지 말아야 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지만, 기존에 축적된 나의 나태한 행동이 계속 일어나게 되었을 때, 인지-행동 불일치가 일어나 인간은 불행하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나태함에 대한 인지-행동 불일치는 왜 인간을 불행하다고 생각하게 만들까? 인지-행동 불일치는 정신적인 고통을 주어 우리를 불행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행복을 고통의 해소 측면에서 해석하는 관점에 대해 알아보아야 한다. 고통은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으로 나뉘어져 있다. 육체적 고통은 배고픔, 갈증, 병드는 것 등의 고통이고, 정신적 고통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고통, 슬픔, 공포, 절망, 두려움 등의 고통이다. 이러한 고통들은 인간을 불행하게 한다. 즉 행복은 고통이 주는 고통스러운 느낌에서 벗어나야 얻을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이러한 고통들을 해소하고 행복하고 싶어 한다. 고통을 없애면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때 인지-행동 불일치는 정신적 고통의 느낌을 인간에게 준다는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현상을 뜻하는 인지-행동 불일치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오는 정신적 고통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태함에 대한 인지-행동 불일치는 정신적 고통을 주어 나로 하여금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리하자면 미래의 이익보다 현재의 이익이 중요하다는 행동은 나태한 행동이다. 나는 미래의 이익을 더욱 중요시하므로 나태한 행동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사실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지만, 기존의 환경적/유전적 요인으로 인해 설계된 행동 유도 방식에 의해 나태한 행동이 계속 일어나게 되었을 때, 인지-행동 불일치가 일어나 정신적 고통을 느끼고, 나는 불행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다음 내용을 정리하기 전 분명하게 할 것은 현재의 안위를 포기하고 미래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것을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나태한 행동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이익을 중요시하면 미래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현재의 이익을 더욱 추구한다면 나태함은 긍정적 요소가 될 수 있다. 문제는 미래의 이익을 현재의 이익보다 더욱 중요시하는데, 현재의 이익을 중요시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나태한 행동이 자신에게 안 좋다고 생각하는데 나태한 행동을 하는 인지-행동 불일치가 해결해야할 부정적인 것이다.

즉 인지-행동 불일치 상황에서 나오는 나태한 행동이 불행한 것이다. 인지-행동 일치가 되는 상황에서 나태한 행동은 행복할 수 있다.

1-2. 기본적인 행복의 정의에서 나태함을 해결하는 개괄적인 방법

-미래의 이익을 더욱 중요시하는 방향으로 인간 행동 유도 방식을 재설계해 나태한 행동(인지-행동 불일치)을 해결할 수 있다.

인간에서 나태함에 대한 인지-행동 불일치가 나타나는 핵심적인 이유는 나태한 사람들은 나태한 행동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환경적/유전적 요인으로 인해 형성된 나태한 사람의 인간 행동 유도 방식은 나태한 행동을 하도록 코딩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행동 유도 방식의 재설계를 통해 인지-행동 불일치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인지 행동 불일치를 그렇다면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미래의 이익을 현재의 이익보다 우선시하는 생각만큼의 정도를 인간 행동 유도 방식에 재설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생각을 인간행동 유도 방식에 적용시키는 방법만 알면 된다. 그렇게 된다면 어떤 생각을 하던 행동으로 연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방법에 대해서는 추후 뇌과학적 관점에서 구체적인 방법을 도출해 보겠다.

어쨌든 기본적 행복의 정의에서 나태함으로 인한 불행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태함을 유지시키는 인간 행동 유도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인간 행동 유도 방식을 현재의 나의 인식대로, 현재의 이익보다 미래의 이익을 더욱 추구하는 방식으로 변화시켜 행동을 생각/인지하는 대로 바꾸어야 한다. 추후에 인간 행동 유도 방식에 대해 신경전달물질의 관점에서 정의할 것이고, 이를 바꾸는 해결책을 제시할 것이다.

이 행복의 관점에서의 해결책을 성실히 이행한다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어떤 사람으로 형성될 것인가?

가능한 첫번째 경우: 치밀한 전략 설정이 잘 되지 않았거나, 미래의 이익을 중시하는 인간 행동 유도 방식이 잘 설계되지 않았다면, 미래의 내가 원하는 이익을 얻지 못할 것이다. 어느 순간 이 전략으로는 미래의 이익을 절대 얻지 못할 것임을 인지하게 될 것이다. 이때에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며 행복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현재에 만족하며 사는 삶이 안 좋은 것일까? 그 삶도 행복할 수 있다.

증명해 보자. 나의 인생 목표는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이다. 좋은 아빠가 될 때 가장 행복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여건으로 좋은 아빠가 되지 못하더라도 나는 행복할 수 있다. 사실 나의 인생 목표를 구체적으로 들여다 보자면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 것이다. 그때 내가 굉장히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빠가 되지 못하더라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으며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더욱 구체적으로 인생 목표를 들여다 보자면 내 인생 목표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이다. 상처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은 나에게 매우 큰 행복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빠가 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상처를 받을 누군가를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은 굉장한 큰 행복으로 다가온다. 이것이 정신승리로 다가올 수 있지만, 이 논리를 통한 정신승리는 실제로 나에게는 정신’승리’가 되는 논리이다. 이 상황에서 이 논리를 상상할 때 행복하다. 정신승리라는 부정적 표현으로 설명이 될 수 있는가? 따라서 이 상황에서는 이러한 논리로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것 같다.

가능한 두번째 경우: 미래의 내가 원하는 이익을 얻기 위해 현재의 이익을 포기하면서까지 노력하는 단계이다. 이 경우 미래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람이다. 특히 내가 원하는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치밀한 전략 설정이 필요하다. 치밀한 전략 설정이 잘 되고, 미래의 이익을 중시하는 인간 행동 유도 방식이 잘 설계되어 있다면 내가 목표하는 이익은 충분히 달성 가능하다. 지금 시기가 전략을 설정하는 시기-커리어 설정-이고, 행동 유도 방식 재설계하는 시기-보고서 작성-이다. 따라서 지금의 시기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의 시기를 잘 지나가고 그냥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어느샌가 내 목표 이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가능한 세번째 경우: 미래의 내가 원하는 이익을 얻은 상태에 있는 경우이다. 내가 원하는 이익은 매우 구체적이다. 그 이익은: 가족 전체가 돈 걱정 안 해도 될 만큼의 수입이다. 굉장히 추상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굉장히 구체적이다. 그 경제학적 가치는 숫자로 정해지지 않지만 대충의 분위기는 내가 명확히 인지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돈 걱정을 해 보기도 했고 돈 걱정을 안해보기도 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내가 원하는 이익을 얻은 상태가 되었을 때까지 계속 미래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이 때 자신의 직업 능력을 유지하는 선에서 노력을 유지할 것이고, 내 가족들에게 성실한 삶을 살 것이다. 이 경우 미래의 이익보다는 현재의 이익을 중요시하는 나태한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다.

즉 기본적인 행복의 정의로 나태함을 해결한다면, 즉 나의 행동 유도 방식을 잘 설정한다면, 위의 세가지 형태의 사람 중 하나로 될 것이다. 위의 세가지 형태를 다시 두가지로 요약하자면 ‘이익 목표를 이루었거나’ ‘이익 목표를 이루지 못했거나’로 나눌 수 있다. 이익 목표를 달성할 때 까지는 미래의 이익을 우선시할 것이다. 이익 목표를 달성했다면 그 이익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로만 노력을 하며, 나머지는 나태한 삶을 살 것이다. 삶을 즐기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특정 나이까지 아예 목표 이익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인생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냥 그 삶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 것이다.

그렇다면 몇 살 때까지 목표 이익을 달성해야 하는가? 30살이다. 30살까지 목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더 이상 넘어가면 나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지난 수년간 매우 나태했고 시작점이 매우 남들에 비해 매우 낮다.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기간이 적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 더욱 노력하는 것은 습관 설계로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어떤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좋은 습관과 충분한 시간을 통해 점진적으로 성장하다 보면 자연스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행동 유도 방식으로의 설계가 좋은 습관 설계이기 때문에, 다시 한번 강조하게 되지만 행동 유도 방식의 재설계는 나태함을 극복하는 것과 인생 목표를 달성하는 것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해결책이다.

따라서 행동 유도 방식 재설계에 대해 이후에서 심층적으로 다룰 것이다.

그러나 행복의 정의는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것을 원하고 얻을 때 발생하는 감정’으로만 정의되지 않는다. 앞으로 행복의 정의를 2가지 더 살펴볼 것인데, 이전에 다뤘던 행복의 정의와는 맥락이 다른 행복이다. 3가지 정의 모두 접근하는 방식이 매우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나태함을 접근하는 방식 또한 매우 달라진다. 이제 행복의 정의 중 2번째 정의인 붓다 출현 이전의 진정한 행복에 대해 알아보자.

1-3. 붓다 출현 이전의 진정한 행복의 정의에서 나태함을 해결하는 방법

-감각적 욕망에서 벗어남을 조건으로 생기는 행복한 느낌, 즉 벗어남의 행복이 진정한 행복이다.

붓다(buddha, 깨달은 자) 출현 이전에서 정의된 행복에는 1. 감각적 욕망의 행복과 2. 벗어남의 행복이 있다. 감각적 욕망의 행복, 즉 소유의 행복은 ‘다섯 감각대상에 대한 욕망을 충족함으로써 일어나는 행복한 느낌’이다. 이것이 내가 이전 단락에서 정의한 행복이다. 반면 벗어남의 행복, 즉 무소유의 행복은 ‘감각적 욕망에서 벗어남을 조건으로 생기는 행복한 느낌’이다. 이것이 붓다 출현 이전 세상에서 정의했던 진정한 행복이다. 기부 또는 좋은 일을 할 때 매우 일시적으로 얻거나 수행을 통해 삼매, 지혜를 개발했을 때, 욕망을 떨쳐 버림으로써 얻는 행복이다. 이 벗어남의 행복은 감각적 욕망의 행복과 달리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것을 얻을 때 행복함을 느낀다고 볼 수 없다.

벗어남의 행복을 추구하게 되면 나태함에 빠지지 않게 된다. 그 이유는 나태함이 감각적 욕망의 행복을 추구하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전에 언급했듯이, 나태한 사람들은 현재의 이익을 욕망하고 얻을 때 행복을 느낀다. 현재의 이익에 대한 욕망은 다섯 감각대상에 대한 욕망이므로, 나태함도 감각적 욕망의 행복의 한 종류라고 볼 수 있다. 근데 벗어남의 행복을 한번 맞보게 되면 감각적 욕망의 행복에 대한 애착을 버리기 쉽다고 한다. 일묵 스님에 따르면 ‘쓰레기통에 버려진 음식만 먹던 사람이 자신이 원할 때마다 고급 음식점에서 만들어진 청결하고 고귀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과 같다’고 한다. 그래서 벗어남의 행복을 경험하면 감각적 욕망의 행복을 추구하는 행동인 나태한 행동에 빠질 가능성이 적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벗어남의 행복을 통해 나태함을 없앨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행동 유도 방식을 재설계하는 방법을 통해 나태함을 해결하는 방법은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가?

아니다. 벗어남의 행복 추구를 위해서도 행동 유도 방식의 재설계는 필요하다. 그 이유는 나태함으로 인해 나는 아예 벗어남의 행복을 추구하려고 하지를 않는다. 그냥 일어나자 마자 바로 게임하러 간다. 분명히 나는 명상, 삼매를 수련하면서 행복해지고 싶은데 내 몸은 어제 하던 대로 게임하러 간다. 그래서 일단 명상을 시작하기 위해서 행동 유도 방식을 재설계해야 한다.

즉 붓다 이전의 행복 관점에서는, 행동 유도 방식의 재설계는 벗어남의 행복을 경험하기 위해 수행하는 것이다. 행동 유도 방식의 재설계를 통해 나태함을 해결하고, 일정 수준의 이익을 얻어 감각적 욕망의 행복을 얻기 위함이 아니다. 행동 유도 방식의 재설계를 통해 명상을 시작하게 되어 삼매를 경험하면 자연스레 벗어남의 행복을 추구하며 나태함이 극복될 것이다.

이렇게 해야 되는 이유는 감각적 욕망의 행복은 사실 감각적 고통의 씨앗이 되기 때문이다. 감각적 욕망의 행복을 추구하다 보면 특정 이익을 얻기 위해 수많은 고통을 얻기 때문이다. 그래서 붓다는 감각적 욕망의 행복은 달콤함은 작고 재난은 큰, 개발하지 말아야 할 행복이라고 말했다. 감각적 욕망의 행복은 행복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고통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벗어남의 행복을 주로 추구하게 되면 일정 수준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게 되어 다시 나태해지지는 않을까? 아마 나태해질 것 같다. 벗어남의 행복을 추구하다 보니 아마 현재의 이익에 집중하는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이때의 나태함은 아마 행복한 나태함일 것이다.

그러나 본인의 생존을 위해서, 어느 정도의 이익은 필요하다. 만약 벗어남의 행복을 얻어 나태함에 빠지게 된다면, 생존을 위한 최소 이익도 얻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은가? 즉 벗어남의 행복을 추구하다 보면 매우 가난해져 육체적 고통을 느낄 수 있지 않을 것 같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삼매를 공부에 적용시킬 예정이다. 명상을 통한 삼매를 얻고, 이후에 나올 진정한 지혜를 얻고 나서, 삼매를 공부에 적용시키는 방법을 적용해보고 싶다. 공부에 삼매를 적용시키는 상태, 이 상태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말하는 몰입, flow일 것으로 추측된다. 이 몰입 상태는 인간을 벗어남의 행복을 맛보게 하는 상태로 만들 뿐만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이익도 보장해 줄 것이라고 추측한다.

아직 삼매를 개발 하지도 않았고, 몰입에 대한 이해도 현저히 떨어진다. 그래서 이를 얻기 위해 5,6월달에는 불교 교리와 몰입에 대해 공부해볼 예정이다.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붓다 이전 세상의 행복 정의에서도 나의 인간 행동 유도 방식을 재설계하는 것은 필요하다.

1-4. 초기 불교에서 진정한 행복의 정의에서 나태함을 해결하는 방법

-괴로움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완전히 소멸한 상태, 즉 느낌의 소멸이 진정한 행복이다.

그러나 붓다 출현 이후의 세상, 즉 초기 불교에서는 삼매의 행복은 사실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고 한다. 왜 아닐까? 간단히 알아보자.

우선 초기 불교에서는 느낌 그 자체가 괴로움이라고 한다. 그래서 행복한 느낌도 괴로운 특성이 더 많다고 한다. 감각적 욕망의 행복한 느낌은 행복은 적고 재난은 많다고 한다. 벗어남의 행복 또한 느낌이라는 것이다. 굉장히 상위의 행복이지만 일시적인 행복을 얻고 삼매의 상태에서 벗어나면 그 행복을 누리지 않는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즉 벗어남의 행복은 무상하기에 불완전 하다. 여기서 무상이라는 말은 단순히 의미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뜻이다. 무상은 스스로 존재하지 않고 수많은 원인과 조건에 의지하여 일어나는 결과라는 의미이다.

이 보고서에는 많은 내용을 생략했기 때문에 이해가 잘 안되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 공부하고 있는 중이고, 5,6월달 보고서에는 구체적으로 이 내용을 정리할 것이다.)

따라서 느낌 자체가 괴로움이므로 행복은 느낌의 소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괴로움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완전히 소멸한 상태가 행복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붓다의 견해에서 행복과 괴로움은 느낌이 아니라 특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느낌의 소멸이 행복이다.

그러나 우리는 존재하면서 감각기관을 통해 느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존재하면서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다. 느낌은 이전에 나왔듯이 괴로움이므로 행복한 느낌도 괴로움이다. 그래서 우리가 존재하면서 완전한 행복을 실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우리가 행복이라고 느끼는 것도 괴로움의 측면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존재 자체가 괴로움이라고 붓다는 말한다. 행복한 느낌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괴로움이고, 이전에 정의한 행복들은 영원하지 않다는 단점이 있어서 존재는 괴로움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죽어야 하는가? 존재 자체가 괴로움이지 않은가.

아니다. 놀라운 점은 존재 자체가 괴로움이지만 이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나면 행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 존재 자체가 행복하지 않게 설계되었다는 것을 인지하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아(無我), 나는 고정된 실체로 존재하지 않고, 수많은 생각, 수많은 원인, 수많은 부분들에 의존하여 존재하는 무상한 존재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다. 또한 나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나 현상이 무상하다는 것을 알면 행복할 수 있다. 이때의 행복은 느낌의 소멸일 것이다. 즉 존재 자체가 괴로움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면 느낌의 소멸이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 (근데 계속 행복 할 수 있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이런 올바른 인식인 통찰 지혜가 있더라도 삼매의 상태 없으면 행복을 인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삼매+통찰 지혜 둘 다 있어야 행복을 인지할 수 있다.)

한편 지금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이렇게 생각했을 때 우리 존재는 무의미하므로 행복하기 위해 그냥 죽어도 된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실제로 바이살리에서 수많은 스님이 자살을 했던 일화가 있다.

그러나 이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가 추구해야하는 생각은 우리는 고정된 실체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원래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아니다. 스스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또 고정된 실체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조건들에 의지하여 우리는 존재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물론 그 실체는 없지만, 수많은 원인에 의존하여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존재 자체가 괴로움이므로 우리는 죽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위의 생각처럼 존재는 연기(緣起, 모든 현상은 독립 ·자존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모든 조건 ·원인이 없으면 결과도 없다는 개념)해서 일어난다는 것을 이해하면 우리는 행복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우선 나의 행동 유도 방식을 개선해서 삼매를 익히고, 통찰 지혜를 공부할 것이다. 그 다음 생존에 필요한 최소 이익을 위해 공부하는 것에 몰입(삼매)를 적용시키는 것을 공부할 예정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태함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1-5.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의 정의에서 나태함을 해결하는 방법

-행복은 헤도니아와 에우다이모니아로 나뉜다. 헤도니아는 쾌락을 의미한다. 에우다이모니아는 인간이 도덕적으로 탁월하다고 생각하는 행동, 판단, 의도에 완벽함을 추구하며 살 때 얻는 감정을 의미한다. 그래서 행복의 에우다이모니아 정의에 초기불교의 행복이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인간 행동 유도 방식을 바꾸는 방법에 대해 알아볼 때가 되었다. 그러나 인간 행동 유도 방식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의 정의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현재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의 정의를 알아보는 이유는 행복을 객관적인 수치로 표현하려는 뇌과학적, 심리학적 분석은 모두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의 정의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뇌과학을 통해 행복해 지는 방법은 또 불교에서 제시하는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과는 다르다. 추후에 뇌과학/심리학을 통한 행복해지는 법을 이해하기 위해 심리학에서 사용중인 기본적인 행복에 대한 정의를 이해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두가지 요소로 나누어서 정의한다. 그 두가지 요소는 1. 헤도니아 (hedonia)와 2.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이다. 헤도니아는 쾌락에서 오는 행복을 의미한다. 이 행복은 감각적 욕망의 행복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때 얻는 행복으로 볼 수 있다.

에우다이모니아는 미덕적으로(virtuously) 삶을 살 때 얻는 행복이다. 미덕(virtue)의 정의는 moral excellence, 도덕적 완벽함(탁월함)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서 도덕적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바람직한 의도, 행동, 판단’이라는 뜻을 가진다. 그래서 moral excellence는 ‘자신이 기준에서 바람직한 의도, 행동, 판단의 완벽함’을 의미한다. 도덕적 완벽함의 예시로는 배려, 나눔, 친절함, 행복 전도, 우정, 돈, 아름다움 등의 다양한 것들이 있다. 인간에 따라 바람직한 행동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옳은 것의 탁월함’은 인간에 따라 다양할 수 있다.

그래서 미덕적인 삶은 자신의 기준에서 바람직한 행동을 탁월한 수준으로 실행하는 삶이라는 것이다. 이 미덕적인 삶을 살 때 에우다이모니아라는 행복을 경험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 지혜라는 미덕을 쌓아 에우다이모니아를 얻었다고 한다. 미덕적인 외과 의사에게 미덕은 인내심, 분석력, 손재주 등의 탁월함일 것이다. 그래서 에우다이모니아는 인간 번영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우리는 인간적으로 번영할 때, 우리에게 행운과 삶의 성공을 겪을 때 에우다이모니아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에우다이모니아의 행복은 과정이 아니라 결과에서 나온다는 것이 단점으로 작용한다. 과정이 아니라 성공한 결과에 따라 얻는 행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불운에 매우 취약하다. 불운으로 인해 인간 번영이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될 수 있다. 만약 외과 의사는 자신의 미덕을 뛰어난 손재주로 여겼지만, 어느 날 손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고 하자. 이때 외과 의사는 자신이 쌓아왔던 미덕이 없어져 더이상 에우다이모니아를 얻지 못할 것이다.

또한 미덕을 개발하는 과정은 자신에게 타고난 것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도 단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적 사색이 지적 미덕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철학적 사색을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을 위한 부가 그 당시에는 필요했다. 그래서 부는 철학적 사색이라는 미덕의 준비물이지만, 모두가 갖고 있지 않다. 또한 그는 추한 외모는 우정이라는 사회적 미덕을 개발하는 것에 방해가 된다고 말했다. 즉 사람에 따라 미덕이라는 똑같은 결과물에 도달할 수 없는 현상이 발생한다. 아름다운 외모를 미덕으로 삼는다면 추한 사람은 그 미덕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에우다이모니아를 꾸준히 얻기 위한 여러 법칙이 있다. 그 중 몇 가지만 소개하자면, 1. 미덕스럽게 사는 것을 보상으로 여기는 것이다. 미덕을 보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탁월함을 보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탁월함을 추구하는 것을 보상으로 여기는 것이다. 2. 미덕으로 가는 길을 방해하는 것들을 없애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점을 보았을 때 초기 불교에서 말하는 행복은 에우다이모니아에 포함되는 것처럼 보인다. 초기 불교에서 말하는 행복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바른 견해(통찰 지혜)를 가지고 삼매에서 주객을 없애는 상태를 의미한다. 즉 초기 불교에서 통찰 지혜를 가지는 것과 삼매의 정신을 수련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그 미덕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인해 에우다이모니아가 얻어져 행복을 경험하는 것일수도 있다.

특히 초기 불교에서 얻는 에우다이모니아의 경우 지속가능 하다는 점이 초기 불교가 진정한 행복이라는 주장을 더욱 공고히 하는 것 같다. 아무리 팔이 다쳐도, 생존과 번식에 굉장히 큰 악영향 생기게 되어도 초기 불교의 행복은 사실 바른 견해로 꾸준히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른 견해는 한번 공고히 잡히면 큰 틀에서 잘 변하지 않기 때문에 바른 견해를 미덕으로 삼는 사람들은 에우다이모니아를 항상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꾸준한 행복을 얻고 싶지만, 생존에 필요한 최소 이익을 얻고 싶다. 그래서 공부에 몰입하는 방법을 공부할 예정이라고 이전에 언급했다.

사실 행복의 신경해부학적인 관점을 공부하기 위해 관련 논문을 읽다 보니 ‘마틴 셀리그만’이라는 사람이 정의한 구체적인 행복의 정의에서 심리학과 뇌과학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원래 행복의 신경해부학적 접근만 대충 보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행복의 헤도니아와 에우다이모니아 정의를 공부했는데, 계속 이 분의 이름이 나왔다.

그래서 찾아보았더니 이 분은 긍정 심리학이라는 학문을 창시한 사람이고, 긍정 심리학은 행복을 수치화 하여 누구나 무기력을 극복하고 희망에 찬 낙관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학문이었다. 행복의 에우다이모니아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긍정심리학을 통해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5, 6월달에 또는 이후에 초기불교의 행복을 이해하고, 몰입과 긍정심리학을 공부할 것이다. 알아보니 몰입을 가르치는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또한 긍정 심리학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회복탄력성이라는 개념을 공부할 때 긍정 심리학이라는 단어를 보았지만 뭐 그냥 심리학 앞에 긍정이란 단어를 붙인 것으로 대충 이해하고 넘어갔는데, 회복탄력성은 그저 긍정심리학의 한 해석에 불과했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어쩐지 긍정성을 얻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설명이 굉장히 부족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런 이유가 있었구만…

어쨌든 5,6월달에 이런 공부 과정을 통해 나태함을 극복할 것이다.

2. 뇌과학의 관점에서 나태함을 극복하는 방법

-’나태함 기피 생각-나태한 행동 불일치’인 중독은 생존과 번식에 부정적인 것에 도파민 욕망회로가 과활성화 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나태한 행동을 만들어내는 것에 대한 욕망회로 과활성화를 막는 것이 인지-행동 불일치를 극복하는 방법이다.

지금까지 다양한 행복의 정의에서 인간 행동 유도 방식을 바꾸어야 나태함을 극복하여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인간 행동 유도 방식을 변화시키는 방법에 대해 다룰 것이다.

그 전에 이전의 내용을 정리하고 가겠다. 우선 나태함은 미래의 이익보다 현재의 이익을 중요시하는 상태이다. 따라서 현재의 이익을 더욱 중요시하는 사람의 경우 나태한 행동은 그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지 않는다. 이 사람에게 나태한 행동은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에게 나태함은 문제를 발생시키는가? 나태한 행동은 미래의 이익을 현재의 이익보다 중요시하는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 즉 나태함에 대한 인지-행동 불일치가 되는 사람에게 불행을 안긴다.

이 나태함에 대한 인지-행동 불일치를 만들어내는 핵심적인 이유는 나태한 사람들은 나태한 행동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환경적/유전적 요인으로 인해 형성된 나태한 사람의 인간 행동 유도 방식은 생각과 달리 나태한 행동을 하도록 코딩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행동 유도 방식의 재설계를 통해 인지-행동 불일치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인지 행동 불일치를 그렇다면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미래의 이익을 현재의 이익보다 우선시하는 생각만큼의 정도를 인간 행동 유도 방식에 재설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생각을 인간 행동 유도 방식에 적용시키는 방법만 알면 된다. 그렇게 된다면 어떤 생각을 하던 행동으로 연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방법에 대해 이제 뇌과학적 관점에서 구체적인 방법을 도출해 보겠다.

2-1. 뇌과학적 관점에서 내가 나태했던 개괄적인 이유

-나태한 사람에게서 나태한 행동이 유도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특정 환경에서 나태하도록 만드는 개개인 고유의 유전적 설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유전적 바탕에서 나태함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환경에 있었기 때문이다. 즉 나태함은 유전적/환경적 요인에 의해 발현되는 형질이다.

먼저 나와 같은 나태한 사람들은 나태함을 가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 추상적으로, 개괄적으로 알아보고 가겠다.

나와 같은 나태한 사람들이 나태함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첫째, 그들이 나태함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환경을 사회가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둘러싼 환경이 그들이 나태하도록 유도했다는 것이다. 특히 과거 수렵 채집하던 과거의 환경과 달리 현대의 사회는 나태함을 더욱 증폭시키는 환경이 되었다. 현대 사람이 과거 사람에 비해 나태함에 빠질 가능성이 높게끔 현대의 환경이 변화했다.

그렇다면 왜 현대 사회가 나태함을 더욱 증폭시키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진화적 관점에서 얻을 수 있다. 우선 과거 수렵 채집하던 시절 우리의 생존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던 행동들이 몇몇의 현대 환경에서는 생존에 악영향을 끼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나의 구체적인 예로 음식이 있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서 보이는 음식은 가능한 바로 먹어 놓아야 했다. 몇일동안 식량을 구하지 못하고 굶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음식을 저장할 수 있는 기술 또한 부족했기 때문에 미리 몸속에 영양분을 저장해 놓아야 했다. 그래서 맛있는 음식이 보이면 배불러도 먹도록 하는 행동 유도 방식이 자연선택 되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서는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보이는 대로 먹는 행동은 오히려 생존에 악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본인의 하루 대사량보다 음식을 더욱 먹게 되면 과체중이 되고, 과체중은 비만으로 이어져 당뇨, 고지혈증 등의 다양한 만성 질환 발병의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간 유전자에 프로그램 되어있는, 생존을 위한 인간 행동 유도 방식이, 변화된 현대의 환경에서는 나태함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행동 유도 방식은 무엇일까? 연구자들은 신경전달물질의 관점에서 답을 찾았다. 인간은 수많은 화학 물질들로 구성되어 있고, 인간의 모든 구성물과 행위는 화학반응을 통해 이루어지는 결과물에 해당한다. 특히 인간의 생각은 뇌 속에서 여러 신경전달물질들이 화학반응을 하여 신호를 전달하고, 뇌에서 새로운 신경망을 생성, 연결하여 이루어진다. 인간의 행동 또한 생성된 뉴런을 통해 신경전달물질이 뇌의 특정 부분을 지나고 그 신호가 관련 근육으로 이동해 그 행동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인간의 행동은 특정 신경전달물질에 의해 유도된다는 것을 유추해 낼 수 있었다.

그래서 수많은 연구를 통해 과학자들은 인간 행동을 일으키는 의지는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뇌의 특정 부분에 도달함으로써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도파민의 뇌속에서의 작용 기전인 도파민 시스템이 대표적인 인간 행동 유도 방식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언제 도파민이 생성될까? 도파민은 인간의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인지할 때 생성된다. 눈 앞에 맛있는 음식이 보이면 우리는 그것을 먹고 싶다는 생각과 그 음식을 먹으려고 하는 의지가 생성되는데, 그 이유가 바로 그 음식이 인간의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유전자의 관점에서 볼 때 자신의 유전자가 복제되도록 하는 행동이 발생될 수 있을 때 도파민이 복측피개영역에서 생성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점은 이 도파민의 생성은 우리가 제어할 수 없는 본능이라는 것이다. 자연선택으로 인해 설계된 인간의 생존 전략으로 특정 상황에 따른 도파민의 생성은 우리가 조절할 수 없는 본능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도파민 시스템이 앞으로 얘기할 인간 행동 유도 방식이다. 시각적으로 인지하는 상황에 따라, 또는 도파민 수용체 농도에 따라, 등등 환경적/유전적 요인으로 인해 도파민 분자 생성 농도, 뇌로의 도파민 전달 농도가 달라져 행동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이후에 자세히 나올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이유로 나태한 사람들이 나태함을 가지고 있는 첫번째 이유는 그들이 나태함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환경을 사회가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행동 의지를 만들어 내는 인간 행동 유도 방식이 고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상황이 현대에서 너무 많이 만들어졌다. 음식 말고 포르노를 예로 들자면,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실제 성관계를 하는 느낌을 화면으로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이 실제 성관계를 하고 있다는 시각적 착각-실제 번식 행위를 하고 있다는 착각-은 포르노를 보는 행동을 더욱 유도하게 되고, 포르노에 집착하고 중독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사실 포르노를 보는 행위는 미래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이므로 나태함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예를 통해 과학 기술이 발달된 현대 환경은 나태함을 더욱 유도하게 되었고, 이는 주변 환경 때문에 나태함이 만들어졌다는 주장에 더욱 힘을 실어준다.

나태한 사람들이 나태함을 가지고 있는 두번째 이유는 개개인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나태함이 유도될 수밖에 없었던 개개인 고유의 유전적 설계 때문이다. 도파민 시스템은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가지고 있지 않다. 의지 생성과 관련된 몇 가지 형질이 유전적인 요인에 의해 달라진다. 이 사실은 사람마다 행동을 유도하는 의지력이 선천적으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지지한다.

따라서 나태함을 이끌어내는 인간 행동 유도 방식은 환경적 요인과 유전적 요인에 의해 만들어지는 형질이다.

2-2. 도파민의 관점에서 내가 나태했던 개괄적인 이유

-인간 행동 유도 방식인 도파민 시스템의 관점에서 중독 행위는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보상으로 인식되고, 실제로도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보상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나태함을 거시적으로 분석하여 정의했다. 이제부터는 도파민 시스템을 더욱 알아보아 도파민 시스템의 관점에서 나태함을 더욱 구체적으로 정의할 것이다.

먼저 도파민은 복측피개영역에서 생성된다. 복측피개영역에서 생성된 도파민은 뇌의 두가지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데, 한 곳은 측좌핵이고, 한 곳은 전전두엽이다. 여기서 매우 흥미로운 점은 도파민의 도착지점에 따라서 만들어내는 행동의 유형이 매우 달라진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측좌핵은 욕망과 관련되어 있는 뇌 영역이고 전전두엽은 논리적 사고, 추상적 사고에 관여하고 있는 뇌 영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파민이 전전두엽으로 이동하게 되면, 미래의 이익을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짜게 되고 그 계획을 실행할 수 있게 도와준다. 또한 측좌핵으로 도파민이 이동하게 되면 미래의 이익을 더욱 강력하게 원하게 되며 특정 행동에 열정을 불러일으킨다. 책 <도파민형 인간>에서는 도파민이 측좌핵으로 이동하는 경로를 ‘도파민 욕망회로’로 부르고 도파민이 전전두엽으로 이동하는 경로를 ‘도파민 통제회로’로 부른다. 도파민 통제회로는 미래의 이익을 위해 현재의 안위를 선택하는 행동을 통제하기 때문이고, 도파민 욕망회로는 미래의 이익을 욕망하도록 유도하는 회로이기 때문에 부르는 것 같다. 앞으로 이 글에서는 편의상 각각의 회로를 ‘욕망회로’와 ’통제회로’로 부르도록 하겠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회로들에 관계없이 이 도파민이 인간 행동을 유도하는 핵심적인 신경전달물질이라는 것이다. 사실 정확히 얘기하자면, 무언가를 원해서 미래의 이익을 위해 현재의 이익을 포기하는 행동은 도파민에 의해 조절된다. 도파민이 없으면 ‘노력’이 없다는 얘기다.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이 결론이 도출될 수 있다. 도파민 생성 부위에 신경독성물질을 주입하여 도파민이 부족한 쥐와 정상 쥐를 준비했다. 그리고 맛있다고 느끼는 밥은 버튼 1번을 눌러야 먹을 수 있고 그냥 항상 먹던 맛없지는 않은 밥은 그냥 먹을 수 있도록 설계한 방을 준비했다. 이때 도파민 부족 쥐들은 그냥 밥을 먹었고 정상 쥐들은 버튼 한번 누르기라는 노력을 통해 맛있는 밥을 먹었다. 이를 통해 도파민이 미래의 이익을 위해 현재의 이익 손해를 감수하는 행동을 일으키는, 즉 노력을 일으키는 핵심적인 분자임을 알게 되었다.

문제는 욕망회로가 과활성화 될 때 발생한다. 자극이 일정 수준을 넘어 욕망 회로가 과활성화 될 때 중독이 일어난다. 중독을 일으키는 자극이 욕망회로를 과활성화 시킬 때 중독이 일어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자극이 어떻게 해서 욕망회로를 과활성화 시켜 중독을 일으키는지 알아보자.

이를 알아보기 전에 한편 중독개념을 정리하고 가겠다. 우선 중독의 사전적 정의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행위에 강박적으로 매달리게 되는 질환이다. 인간은 행복을 위해 모두 특정 가치를 강박적으로 쫓으며 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중독은 그 인간이 행복하지 않도록 만드는 부정적인 것(인지-행동 불일치 되는 행동)을 강박적으로 쫓을 때 발생한다는 것이다.

특히 여기서 중요한 점은 모든 중독 행위는 인지-행동 불일치 되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뇌과학적인 관점에서 중독 행위는 중독 대상에 대해 ‘wanting’은 증가되지만, ‘liking’은 감소되고, ‘learning’은 증가하다가 일정 수준에서 더이상 증가하지 않는다. (‘wanting’, ’liking’, ’learning’은 보상(헤도니아)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이다. 이중에서도 특히 ‘liking’ 즉 좋아함이 쾌락, 만족과 연관되어 있어 헤도니아와 양적 상관관계가 크다.) 따라서 중독은 중독 행위를 좋아하지 않는데 몸은 원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어 불행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인지-행동 불일치는 두가지로 나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두가지는 1. ‘나태함 선호 생각-성실한 행동 불일치’와 2. ‘나태함 기피 생각-나태한 행동 불일치’이다. 내가 계속 문제의식 삼는 것은 2번이다. 1번인 ‘나태함 선호 생각-성실한 행동 불일치’도 불행을 가져올 수 있지만 이것은 내 불행의 원인이 아닐뿐더러 이 보고서의 주된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무시해도 된다. 여태까지 얘기했던 인지-행동 불일치는 모두 2. ‘나태함 기피 생각-나태한 행동 불일치’라고 생각하면 된다.

어쨌든 중독은 인지-행동 불일치 중에서도 2번: ‘나태함 기피 생각-나태한 행동 불일치’라는 것이다. 이전 단락을 통해 중독이 인지-행동 불일치를 만들어 내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왜 ‘나태함 기피 생각-나태한 행동 불일치’가 만들어질까? 왜 인간은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원할 수 있는 것일까? 왜 인간은 중독에 빠질까?

이것을 알기 위해 도파민이 구체적으로 언제 생성되는지 알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을 인간은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된다고 본능적으로 인지하여, 뇌에서 도파민이 생성되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연구를 통해 알아본 결과 핵심적으로 보상예측오류가 일어나거나 일어날 가능성이 있을 때 도파민이 생성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보상 예측오류는 무엇일까? 보상예측오류는 ‘예측한 것보다 보상이 클 때의 오류’를 의미한다. 노래를 듣다가 좋은 신곡 노래를 들으면 보상예측오류가 나와 도파민이 생성된다. 그러나 그 노래만 계속 반복해서 들으면 더 이상 예측한 보상의 크기가 줄어들어 도파민이 이전만큼 형성되지 않아 보상예측오류는 깨지게 된다. 또한 유튜브를 의미없이 계속 보는 중독 현상은 보상예측오류가 일어날 가능성과 이로 인한 도파민 생성 때문일 것이다. 유튜브 자체에서 나오는 재미를 한번 느꼈다면 그 재미가 또 나올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계속 유튜브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 보상예측오류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도파민이 지속적으로 생성되어 중독된 것이다.

즉 우리가 중독에 빠지는 이유는 인간 행동 유도 방식인 도파민 시스템이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행동으로 착각하여 중독 행동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행복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그러나 중독 행동은 실제로 내가 원하는 행동이 아니지만 몸이, 인간 행동 유도 방식이, 도파민 시스템이 도파민을 본능적으로 형성하여 행동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사실 엄연히 따지면 중독 행동은 인간이 원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중독 행동 이후 이것이 초래하는 부정적 결과가 중독 행동을 좋아하지 않는 행동으로 만드는 것이다. (+더 공부해야 됨)

어쨌든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 우리가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고 행복을 느낄 때의 과정을 살펴보자. 그 과정은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것을 시각적으로 인지했다-> 모든 보상은 보상예측오류를 통해 얻어진다-> 시각적 정보가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보상의 정보와 일치한다-> 보상예측 오류를 일으킨다-> 도파민이 생성된다-> 보상을 얻기 위한 행동이 일어난다.]

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인지되는 행동을 하고 불행을 느낄 때, 즉 중독 행동을 할 때의 과정을 살펴보자. 그 과정은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것을 시각적으로 인지했다-> 모든 보상은 보상예측오류를 통해 얻어진다-> 시각적 정보가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보상의 정보와 일치한다-> 보상예측 오류를 일으킨다-> 도파민이 생성된다-> 보상을 얻기 위한 행동이 일어난다-> 그러나 그 시간에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크게 되는 것을 놓쳤다. 중독 행위를 통한 보상보다 놓친 보상이 훨씬 컸다 -> 그래서 중독 행동에 대한 원함이 떨어져 현타가 온다.]

따라서 내가 중독에 빠졌던 핵심적인 이유는 중독 행동이 나에게 보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독 행동은 나에게 보상이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언급했듯이 과학 기술의 발달로, 그리고 게임 산업의 발달로 게임과 같은 중독 행동은 보상예측오류를 굉장한 크기와 빈도로 발동시킨다. 그래서 나는 중독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3. 도파민의 관점에서 내가 나태했던 구체적인 이유

이제 구체적으로 도파민이 어떤 부위에 어떻게 얼마만큼 이동하여 중독을 일으키는지 알아보자.

앞서 언급했듯이 두가지 도파민 회로 중 욕망회로에 도파민이 과도하게 실리게 되면 나태함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독을 일으키는 자극이 들어왔을 때 왜 통제회로는, 복측피개영역에서 도파민이 생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활성화되지 않아 욕망회로를 통제하지 못할까? 쉽게 정리하자면 왜 중독이 발생하는가?

그 이유는 1. 유전적 요인에 의해 도파민 욕망회로가 지나치게 발달되게 설계되었기 때문이거나, 2. 인지-행동 불일치를 일으키는 중독 행위에 욕망회로가 과활성화되도록 설계된 환경 때문이다.

우선 유전적으로 욕망회로가 지나치게 발달되어 있다고 하는 것에는 여러가지 경우의 수가 존재할 수 있다. 크게 두가지만 살펴보자면, 유전적으로 욕망회로가 지나치게 발달 되어있는 경우는 첫째,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욕망회로의 신경세포당 수용체의 개수가 많다는 것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경로가 도파민을 전송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우선 도파민 합성 기능이 있는 뇌세포는 스위치가 켜지면 주머니에 보관하고 있던 도파민을 밖으로 내보낸다. 이 밖으로 내보내진 도파민은 근처의 다른 뇌세포 표면에 붙어있는 도파민 수용체에 결합한다. 새로 활성화된 뇌세포는 똑같은 일을 반복하게 된다. 일정 시간이 지나 열기를 식힐 시점이라고 판단되면 앞쪽 뇌세포의 도파민 운반체는 도파민을 다시 빨아들인다. 따라서 확산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신경세포당 도파민 수용체의 개수가 많을수록 도파민 회로의 활성이 증가하는 것은 타당하다. 다른 요인들이 동일하다면 유전적으로 욕망회로가 많이 발달되어 있는 경우에는 도파민 수용체의 개수가 많기 때문에, 강한 자극이 왔을 때 욕망회로가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유전적으로 욕망회로가 지나치게 발달 되어있는 두번째 예는 통제회로의 도착지점인 전전두엽이 충분히 발달되지 않는 경우이다. 논리적/추상적 사고를 담당하는 전전두엽이 발달되지 않은 경우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계획 생성이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도파민이 생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일을 수행하고자 하는 욕구만 증가할 뿐 계획은 세워지지 않아 충동적이고 강박적인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전전두엽의 발달은 길면 20대 초중반때까지 발달하는 경우가 있다. 만약 전전두엽이 10대 초중반에 발달된다면 통제회로에 더욱 힘이 실리게 되어 미래의 이익을 방해하는 중독 행위에 빠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반면 환경적인 요인으로 통제회로가 욕망회로를 통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경우는 인지-행동 불일치되는 행위에 욕망회로가 발현되도록 설계된 환경 때문이다. 통제회로가 욕망회로를 통제하지 못하는 환경적 요인에는 1. 욕망회로를 잘 활성화시키는 과학기술이 있을 수 있다. 통제회로의 불능의 또다른 예는 2. 미래의 이익을 잘 이해하고 있지 않아 미래의 이익에 대해 욕망회로 활성이 안되어 있는 경우이다. 이 경우 내 주변에 있는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것이 평생 영원하다는 생각 때문일 수 있다. 부모님이 주시는 의식주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그러나 내가 공부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부모님이 주었고, 그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도록 부모님이 유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님이 주시는 의식주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 경우의 구체적인 예는 이것 외에도 많다. 사랑/배려/안정감 같은 긍정적 정서를 경험하지 못한 경우, 미래의 이익에 대한 이해가 현저히 적으므로 미래 이익에 대한 욕망 회로가 충분히 발달되지 않은 경우일 수 있다. 긍정적 정서를 경험하지 못해 몰라서, 노력 자체에 대한 의지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2-4. 유전적 요인의 개선을 통해 나태함을 해결하는 방법

-오직 이상값(통계적으로 매우 크거나 작은 값)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만 약물치료와 같은 유전적 요인의 개선 치료 방법이 나태함을 극복하는데 유의미하다고 할 수 있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유전적 요인의 개선을 통해서는 나태함을 해결할 수 없다. 또한 긍정적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환경이 있어야만 나태함을 극복할 수 있다. 따라서 환경적 요인의 개선이 나태함 극복에 있어서 핵심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나태함을 해결하기 위해 나태함의 원인을 분석해 보았다. 나태함의 원인은 2가지로,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태함의 구체적인 원인은 이유는 앞서 언급하였듯이 1. 유전적 요인에 의해 도파민 욕망회로가 지나치게 발달되게 설계되었기 때문이거나, 2. 인지-행동 불일치를 일으키는 행동에 욕망회로가 발현되도록 설계된 환경 때문이다.

먼저 나태함을 극복하기 위해 유전적 요인을 바꾸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부정적인 것에 대한 욕망회로 과발현을 통제하기 위한 방법이 유전적 요인을 바꾸어 나태함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유전적 요인을 바꾸는 방법은, 위의 내용을 토대로 유추해 보았을 때 1. 도파민 수용체의 농도 또는 2. 전전두엽이 발달하는 시기를 조절하는 등의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우선 이 두가지 방법을 구체적으로 다루어 보자면, 현재 ADHD, 조현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도파민 수용체의 활성을 억제하는 약물 치료가 적용되고 있다. 이 방법은 욕망회로가 과활성화 되는 상태에서는 수용체의 도파민 활성 부위에 부착되어 신호 전달을 방해하지만, 통제회로나 욕망회로의 적절한 활성은 제한하지 않는 방법이다. 2. 전전두엽의 발달을 촉진하는 방법은 전기적 요법이 있을 수 있다. 전기적 요법으로 전전두엽의 활성을 높이면 통제회로에 더욱 힘이 실리게 되어 나태함을 극복하게 될 가능성이 증가할 것이다. 도파민 통제회로에 힘이 일찍, 그리고 강하게 생길수록 현명한 결정을 내리기 쉬워지기 때문에, 이러한 방법들은 공통적으로 욕망회로의 발현을 약화시키되 통제회로를 강화시키는 것을 지향한다.

그러나 이렇게 유전적인 요인을 바꾸어 나태함을 극복하는 방법에는 한계가 있다. 첫번째 한계는 위의 예시에서 나온 약물 치료들의 경우 부작용의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약물 치료에 부작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전적으로 욕망회로의 활성이 매우 강한 경우의 환자들에게 약물치료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은 부정적인 것에 쉽게 유혹되어 부정적인 것을 매우 쉽게 욕망하기 때문이다. 두번째 한계는 바로 유전적인 요인을 개선하더라도 환경이 긍정적인 것에 대해 욕망회로를 강화할 수 없는 환경이면 무용지물이다.

즉 아무리 욕망회로와 통제회로의 균형이 잘 잡혀 있어 긍정적인 것을 욕망할 가능성이 높은 능력이 유전적으로 큰 사람도, 긍정적인 것에 욕망회로가 발달이 되지 못하는 환경에 있다면 나태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 이유는 부정적인 것(중독 행동)의 자극은 생존과 번식에 매우 큰 도움이 될 것 같은 시각적 인지를 발생시켜 욕망회로의 자극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태함과 관련된 유전적 특징을 조절하든 안 하든 중요한 것은 나태함을 이겨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어쨌든 결국 환경적 요인을 바꾸는 것이 핵심 요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환경을 변화시켜 나태함을 극복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얘기하기 전에 한가지 사실을 강조하고 넘어가고 싶다. 유전적 요인에 의해 성실함을 개발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즉 환경을 바꾸어도 나태함을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 통계를 보았을 때 전 세계인에서 최대 1%에서 조현병을 가지고, 최대 11%의 아이/청소년(4-17세)에서 ADHD가 판명되기 때문에 이들만 하더라도 나태함을 유전적 요인 때문에 극복하지 못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특히 뒤에서 더 나오겠지만 선천적인 질병이 있다면, 목표 행위의 필요한 능력이 늘어나 행동이 설계되기 어렵다. 따라서 환경을 변화시키더라도 나태함이 해결되지 않는 사람들의 경우, 반드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질환에 대한 근본적인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긍정적인 것에 욕망회로가 집중되지 않아 나태함을 극복할 가능성이 매우 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욕망회로를 생존과 행복의 관점에서 긍정적인 것에 집중하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알아보게 되겠지만, 위와 같이 욕망회로를 긍정적인 것에 집중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면 먼저 질환을 치료해야 한다.

이렇게 이상값을 제외하고 나태함을 극복하기 위해 유전적 요인이 아니라 환경적 요인을 바꿔야만 한다는 결론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결론이 환경을 바꿈으로써 나태함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특히 인간은 유일하게 주변 환경을 바꾸어 자신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에, 우리는 나태함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2-5. 환경적 요인의 개선을 통해 나태함을 해결하는 방법

-중독을 통해 느끼는 행복에 대한 욕망을 약화시키고, 성실한 생활을 통해 얻는 행복에 대한 욕망을 강화시키는 방법이다.

부정적인 것(중독 행위)에 대한 욕망회로 과활성화가, 환경적인 요인으로 인해, 통제되지 않는 경우에는 욕망회로가 힘을 못 쓰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욕망회로를 약화시키는 환경을 만드는 방법은 총 3가지가 있다. 첫째 방법은 도파민 욕망회로를 다른 긍정적인 것(성실한 행동으로 인해 얻는 행복)에 대한 도파민 욕망회로와 경쟁시키는 것이다. 대표적인 치료 방법으로는 동기강화요법, MET(motivational enhancement therapy)가 있다. MET는 소망을 단련하는 방법이다. 게임을 통해 얻는 행복보다 공부 같은 건설적인 행동으로 얻는 것들이 주는 행복을 얻고자 하는 욕구를 더욱 원하게 만드는 것이다. 통장 잔고에 쌓여 있는 돈, 멋진 배우자, 좋은 부모, 인정받는 직장 등으로 욕구 대상을 바꾸는 것이다. 게임/유튜브의 욕구보다 진정한 행복으로 가고 싶은 욕구를 더욱 키우는 방법이 MET이다. 이 MET를 시행하는 상담사는 환자가 개선 필요성을 인지하는 발언을 하면 그것에 긍정적인 반응을 함으로서 그 행동의 지속 시간과 강도를 강화하는 positive reinforcement(긍정적 강화) 전략을 사용해야 한다. 이를 통해 환자에게 동기를 부여하여 긍정적인 행동에 대한 욕망을 키워내야 한다. 결국 이 과정은 중독을 통한 행복이 성실한 생활을 통한 행복보다 훨씬 적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고, 이것이 그 둘에 대한 욕구를 각각 변화시키는 방법이다.

욕망회로를 약화시키는 환경을 만드는 두번째 방법은 도파민 욕망회로를 도파민 통제회로와 경쟁시키는 것이다. 대표적인 치료 방법으로는 인지행동요법, CBT(cognitive behavioral therapy)가 있다. 통제회로가 욕망회로보다 우선시되기 위해서 CBT를 통해 욕망회로를 폭주시키는 신호를 제거한다. 게임 중독이라면 게임을 하지 않는 친구들과 약속을 함께 간다던지, 유튜브 중독이라면 유튜브를 연상시키는 앱을 제거하는 것이다. 특히 중독자에게 갈증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은 의외로 예외인 물건일 수 있다.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라던지, 레몬을 자르던 부엌칼이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 본인이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CBT만으로는 완벽한 통제회로의 강화는 불가능하지만, 욕망회로의 활성을 어느정도 줄일 수는 있다.

욕망회로를 약화시키는 환경을 만드는 세번째 방법은 도파민 욕망회로를 현재지향적 회로와 경쟁시키는 것이다. 대표적인 치료 방법으로는 자율적 정신상담 재활 프로그램인 Alcoholic Anonymous(AA)의 ‘12단계 촉진요법’이 있다. AA는 환자들이 다른 회원들과, 절대자(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프로그램)와의 유대감을 지속적으로 다져가면서 자연스럽게 중독이 치유된다. 그 이유는 현재지향적 화학물질들이 뇌에 작용을 하게 되면 미래지향적 화학물질인 도파민이 작용을 안하게 되는데, 뇌의 사교기능 영역이 현재지향적 화학물질들을 동원해 우정을 쌓도록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정을 쌓음으로써 도파민의 개입을 최소화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친목 모임은 현재지향적 화학물질들이 뇌에서 활동하게 하여 죄책감과 같은 현재지향적 감정이 일어나도록 한다. 이런 현재지향적 감정은 훌륭한 동기부여가 되고, 또한 AA는 ‘정서적 지원’과 ‘죄책감의 감시’를 통해 지속적으로 현재지향적 회로의 활동을 유도한다.

3. 3,4월에 나에게 보고서 내용을 적용시킨 과정(일기)

이 보고서를 쓰는 과정 자체가 나태함을 극복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이 보고서를 성실히 잘 쓸 수 있었는지 한번 적어보겠다.

우선 3월달이었다. 먼저 <달라이 라마가 전하는 우리가 명상할 때 꼭 알아야 할 것들>이라는 책을 읽었다. 티베트 불교에 대한 개괄적인 접근을 공부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원래 나태함을 해결하기 위해서 불교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근데 박용환 팀장님이 어느 날 전화로 마음을 그대로 보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셨다. 또한 마이클 A. 싱어의 <상처받지 않는 영혼>을 추천해 주셨다. 마음을 그대로 흘러 보낸다는 것? 상처받지 않는 영혼? 지금도 이해가 잘 되지는 않지만 그때는 완전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세상을 바라보는 완전 새로운 관점인 것 같아서 불교에 대해 공부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 결국 모든 해로운 생각은 고정된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믿음 때문인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내가 스스로 존재하고 있다는 잘못된 생각은 탐욕과 성냄, 그리고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나태함은 없어지지 않았다. 책에서는 분명히 나태함은 내가 영원히 존재할거라는 인식에서 비롯된다고 했는데…. 이거 말고 다른 원인이 있거나 제대로 파악을 못한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래서 그 다음은 습관에 관한 책들을 읽었다. 그중 BJ포그의 행동 설계학이라는 개념이 가장 인상깊었다. 행동은 동기, 능력, 자극의 결합체로 행동 곡선 위에 놓여야 행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은 내 나태함의 발생 원인을 설명할 수 있었다. 특히 나태함은 성실한 행동을 행동 곡선 위에 놓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는 책은 나에게 나태함을 해결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었다.

이 행동설계학에서 인상깊었던 것이 몇개 있다. 그중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행동을 변화시키려면 자극, 능력, 동기 순으로 먼저 개선해야 된다고 한다. 이 순서대로 해야 반발심이 안 든다고 한다. 특히 동기는 매 순간마다 불규칙적이어서 행동을 설계하기 위해 동기를 올려 행동을 유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다.

책을 읽고 행동 설계학을 나에게 적용시켜보려고 했는데, 분명히 적용된 점도 있었다. 습관의 연속화인 앵커링. 꾸준히 하면 쉬워진다. 등은 적용되었다. 근데 내가 고치려는 핵심적인 습관-공부같은 습관-은 생기지 않았다. 착 읽고 공부하고 이런 습관 말이다. 행동 설계학 이론을 익히고 바로 다음에는 대니얼 Z. 리버먼, 마이클 E. 롱의 <도파민형 인간>을 읽었다. 이것을 읽고 정리하는 습관을 한번 행동 설계학으로 잡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초반에는 완전 열심히 읽고 정리했다. 그리고 독후감까지 썼다. 그러나 너무 힘들었다. 독후감을 다 쓰고 나니 더이상 책 읽는 것에 대한 애정이 싹 사라졌다.

책 읽는 습관이 생기지 않은 것에 대한 원인을 분석해보자. 결국 책 읽는 것에 대한 동기가 컸다가 감소한 것이다. 즉 책 읽는 것의 능력은 똑같았지만, 책 읽는 것에 대한 동기는 줄어들어 책 읽는 행위는 행동 곡선 아래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사실 동기를 일정하게 유지시키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행동 설계학에서는 좋은 습관의 자극을 늘리고, 습관에 필요한 능력을 낮추라고 하지만, 사실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 행동의 능력은 낮추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공부하는 것이 쉬운가? 어렵다! 유튜브에 대한 자극을 없앤다! 못 없앤다! 계속 머리속에서 힘들면 정신적 고통을 줄여주는 유튜브를 찾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물론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능력과 자극 요인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동기를 일정하게 유지시키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도파민형 인간을 읽고 한동안 책을 안 읽었다. 그리고 무엇을 했더라? 기억이 잘 안 난다. 뭐 유튜브 보고 운동하고 뭐 그랬을 것이다. 여기서 잠깐! 저 나름대로 열심히 사색하고 명상하고 공부하고 했습니다~~!! 영섭이는 대충 살았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빠지지 않기!!

그 다음에 부모님, 누나와 4월 모임을 가졌다. 사실 이때도 굉장히 마음이 심란했다. 노력하려고 하는데도 잘 안되고, 계속 나태해지니까 말이다. 그래서 일단 공부 계획을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이때 누나가 내 얘기를 듣고는 다음주에 밥 사줄 테니까 서울 오라고 했다. 무슨 조언 해주려나보다 했다.

그래서 그 다음주에 누나와 얘기를 나누었다. 누나의 얘기를 들어보니 누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근데 누나는 이러한 고민에 대한 지속가능한 결론을 지은 것 같았다. 그래서 누나가 나한테 했던 조언이 ‘너 자신을 받아드려야 한다?’ 였다. 사실 어떤 소리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뭔가 그 문장이 내 마음을 찔렀다.

그 이후 나는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았다. 특히 핸드폰에 게임을 하나 설치하게 되었는데, 되게 재미있었다. 그 게임을 하루 종일 6일동안 했다. 세수는 하루에 평균 1번, 샤워는 하루에 평균 0.5번 했다. 일어나자 마자 게임 키고 졸리면 자고. 진짜 하루가 지나면 시력이 반은 줄어든 것 같았다.

근데 신기한 점이 이때는 무언가 달랐다는 점이다. 과거 게임하고 유튜브 볼 때는 끝나고 자괴감이 들었고, 이 자괴감이 성실한 삶의 원동력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는데, 이번에는 좀 달랐다. 나를 받아들인다? 이 말이 뭔가 통했나? 그냥 되게 편안했다.

딱 이 느낌이 어떤 느낌이었냐면 약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이번이 마지막 실수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앞으로도 계속 나태할 수는 있지만, 이번에는 자괴감이 들지 않았다.

그 이후 뭔가 압박감이 없어진 것 같았다. 그냥 놀아도 되고 공부해도 된다. 내 인생이다. 물론 부모님께 경제적 지원은 받고 있지만, 뭐 어때. 내 돈도 아닌데. 그냥 내 인생 살자. 돈이 필요하면 돈 벌러 가겠지.

즉 역설적으로 강한 사람이 되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오히려 강한 사람이 되는 추진력을 주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강한 사람이지만, 강한 사람이 되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이 노력할 수 있게 만든 느낌이다. 그 힘든 노력 자체가 뭔가 힘들지 않고 이제 그냥 하는 느낌? 잘 모르겠다.

왜 그럴까? 모르겠다. 조금 더 공부가 필요해 보인다.

어쨌든 결국 동기를 일정하게 유지시키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 작업이 바로 이 보고서를 쓰는 것이었다. 나의 인생 목적은 무엇인지. 나는 왜 사는지 명확하게 아는 것이 바로 동기를 일정하게 유지시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 보고서를 통해 정리한 내가 인생을 사는 이유는 행복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계획은 행복하기 위해서, 삼매, 초기불교 공부, 이후 몰입 공부, 이후 긍정심리학 공부이다. 5-6월달에는 이렇게 공부할 것이다. 5-6월달에 멘델 세미나가 있어서 생명공학 관련 논문을 읽어야 할 수도 있지만..세미나 참여 안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 내가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진심으로 참여하는 수밖에 없다. (생각 가는 대로 쓰는 일기 느낌이라 이해 부탁드립니다….)

7-8월달에는 원래 ‘내가 부모가 되었을 때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라는 주제로 교육학에 대해 공부해보려고 했다. 3-6월달까지는 나 자신을 매우 주체적이고 긍정적인 어른으로 키우는 방법이라면 7-8월달에 공부 예정한 것은 다른 사람을 유도하는 방법이었다. 이 것을 공부하면 마케팅뿐만 아니라 인간관계, 회사 운영, 상사, 또는 같은 회사 사람들을 유도할 수 있는 skill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특히 삼매를 5-6월달 안에 얻을 수 있을까도 의문이긴 한데, 아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한다. 어떻게? 5월 3째주에 일묵, <사성제> 다 읽고 4째주까지 요약 정리, 암기. 5월 2번째 주까지는 멘델 세미나에 집중. 6월 1째주 명상센터 방문. 6월 1-2주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몰입, flow> 외 2권, 3째주 정리.

이러면 할 수 있다. 긍정 심리학 책은 사서 읽고 싶을 때 그냥 읽기만 하자. 만약 내용이 너무 좋다! 그럼 그냥 몰입 대신에 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된다. 나머지는 7-8월달에 하면 된다.

이 보고서 작성 자체가 공부에 대한 나의 동기를 일정하게 유지시켜주는 방법이었다.

어쨌든 그래서 <도파민형 인간>을 읽고 난 후 도파민의 관점에서 나태함을 바라보게 되었다. 여기서 알게 된 중요한 사실은 바로 나는 나태할 수밖에 없던 환경에 있었기 때문에 나태한 것이라는 점이다. 결국 물론 유전적 요인으로 인한 나태함은 나의 탓이긴 한데, 이상값에 해당하지 않고 충분한 조건에 있으면 나태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왜 나는 나태해졌을까? 어떤 조건이 충분하지 못했을까?

바로 무조건적 지지, 배려이다. 물론 한가지 결과는 수많은 원인이 의존하여 만들어진다. 이 한가지 원인으로 특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위에도 나와있듯이 전전두엽의 발달 속도가 내가 많이 느린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원인도 있다고 하는 것이다. 부족한 배려로 인해 자율성이 많이 없었고, 이로 인해 내가 어떤 것을 해야 즐거움을 얻는지, 행복을 얻는지 고민해 볼 기회가 없었다. 물론 그때 당시에도 게임 중독 때문에 배려 받을 만한 성격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자율성이 없었던 것은 맞다.

사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뭐 내가 살았던 환경을 원망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어디에서 문제가 발생해서 이렇게 되었는지 분석하기 위함이다. 이런 사고 과정을 거치니까 나를 키우는 과정이 너무 어려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다음 세대를 위해서 이 것을 분석하는 것인데, 너무 어렵긴 하다.

만약 엄청 울고 집중력이 약하고 중독 증세가 심한 남자 아이가 있는데, 통제회로의 힘을 키우기 위한 약물 치료도 사용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오직 환경적 요인을 개선해 긍정적이고 삶에 자기 주도성이 있는 어른으로 키워야 하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무조건적 지지이다. ‘내가 이런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으면, 이런 행동을 하겠지’라는 생각이다. 무조건적 지지, 배려는 상대로 하여금 사랑을 느끼게 한다. 왜냐하면 배려는 굉장히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사랑을 통한 행복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인지-행동 불일치는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 성실한 행동을 통한 행복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성실한 행동을 통한 행복은 어떻게 경험하게 할까?

나는 나 스스로에게도 이렇게 하고 있지 않은데, 굉장히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한가지는 확실하다. 강한 사람이 되는 것. 굉장히 강한 사람이 되어 나무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특히 남자 아이는 롤 모델을 찾고 따라하는 경향이 크다고 한다. 롤 모델이 될 수 있는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실 남자가 여자에 비해 진화심리학적으로 빗나갈 확률이 크기 때문에 남자 아이로 포커스를 두는 것이다.

여튼 무조건적인 지지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냐면, 바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무조건적인 지지가 주기 때문이다. 하와이 카우아 섬에 있는 연구에 따르면, 원래 피폐한 삶을 사는 가정에서 원래 대부분의 아이들도 피폐해질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전체 가정의 삼분의 1에 해당하는 아이들은 부모님들처럼 알코올 중독자가 되지 않았고, 이혼 가정이 되지 않았고, 범죄의 길로 빠지지 않았고,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지 않았다. ⅓ 가정에서의 아이들은 긍정적인 아이들로 자라나 있었다. 그 원인을 분석한 결과, 그 아이들은 가족 중 적어도 한명에게서 무조건적인 지지를 받았다. 할아버지, 할머니라던지, 누군가 가족에서 자신에게 무조건적인 지지를 준 한 사람만 있어도 긍정적인 사람,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힘, 즉 회복탄력성을 가진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회복탄력성은 무엇일까? 바로 긍정성이다. 긍정성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었다는 것이다. 한가지 예로 팔 다리가 모두 없는 큰 장애를 입은 사람이 있었다. 나였으면 주변 사람들을 원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은 자신의 장애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장애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왜일까? 이 장애 덕분에 책을 쓸 수 있었고,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긍정성은 위기를 이겨내는 힘이다.

그리고 1주일간 게임만 했을 당시에 되게 놀라웠던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나에게 맞는 게임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사람마다 맞는 공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마다 즐거움을 느끼는 인지-행동 일치된 행동이 있지 않을까?

특히 자기 효능감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자기 효능감이란 내가 진짜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 자기 효능감이 있으려면 단계별 역경을 딛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너무 큰 역경이 있으면 자기 효능감 생성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자기 효능감을 키우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데드라인을 정해 놓는 방법: 데드라인을 정해 놓고 그 데드라인을 맞추기 위해 일을 세분화한다. 세분화하면 또 세분화된 데드라인이 만들어진다. 그 데드라인을 따라가자. 또 한가지 더: 데드라인을 25%~10% 앞당겨 놓자. 못하면 기회가 있으니까.

그리고 나를 과대평가하지 말자. 너무 나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좋다. 자신감 좋다. 그러나 실력이 있을 때까지는 겸손하자. 내 동년배에 비해 지금 실력이 굉장히 떨어져 있다. 물론 어렸을 때에는 유학도 갔다 오고 했기 때문에 동년배에 비해 훨씬 앞서있었겠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다. 현재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자. 넌 특별하지 않다. 인간이기 때문에 특별하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평범하다. 이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자.

어쨌든 자기 효능감을 키우기 위해 데드라인을 정해 놓는 방법을 시험 중이다.

자기 효능감을 키우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선의의 경쟁자와 경쟁하는 것이다. 마이클 조던이 그랬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 효능감 키우는 것의 가장 좋은 방법은 나 자신과 싸우는 방법이긴 하다. 운동으로 치면 점진적 과부화다. 즉 실력의 수치화가 중요하다는 것인데,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그래서 타이머를 샀다. 공부 시간을 기록해서 일주일간 평균을 비교해 볼까? 그래야겠다. 어쨌든 여기까지 읽으셨으면 진짜 대단하신 분들이다. 마지막으로 가면서 사실 사색에 크게 시간을 투자하지 않은 주제여서 아직 결론을 잘 못지은 주제이기도 하고 그리고 사색을 해도 결론이 잘 나지 않은 주제들이었다.

여튼 너무 감사하다. 진짜 너무 감사하다. 읽으신 분들의 생각을 나에게 알려주셨으면 한다. 여러분의 생각과 해결책을 통해 나의 견해를 넓히고 싶기 때문이다. 생각도 궁금하긴 하다.

댓글남기기